사람이 나를 보고 웃어준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 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일이 최근에 있었다.
나는 탈모가 있다.
약도 먹어봤지만, 약 값도 장난 아닌데다 여러 부작용이 있다는 말도 있고
(특히 성기능에 관해)
피나스테리드, 두타스테리드를 먹어도 간신히 유지만 해줄 뿐
더 이상 "풍성"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약도 끊었다.
계속 이런 약을 먹느니, 차라리 보기 흉해 지면 빡빡 깎아버리지 뭐~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마가 넓어져 간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머리 스타일을 아예 짧게 유지했다.
소프트 모히칸으로.
어렸을 때부터 인상이 순해 보인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같은 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냥 막연하게 '평범하게 보이겠지. 나쁘게는 안 보이겠지.
어차피 생각보다 남들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다고 했어~'라는 식으로 살아왔다.
엄마한테 '누가 그렇게 머리를 짧게 깎아놓냐, 어디 동네 깡패 새끼도 아니고'라는 소리는
머리 깎을 때마다 들었지만, 그냥 짧은 머리가 엄마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 소리 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평소에도 나는 관리가 편한 짧은 머리를 선호해왔기 때문에
옛날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내 얼굴은 더 이상 순해 보이는 인상이 아니었다.
순해 보이기는커녕 제3자가 봤을 때 완전 양아치 새끼가 따로 없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단지 머리가 짧다고 해서 인상이 굳는다거나 그런 일은
별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경찰서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강력계 형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경찰서 안에서 걸어오더니
내가 자기 등 뒤에 서는 걸 굉장히 경계하는 거다.
흠칫흠칫 상체까지 돌려서 확인할 정도로...
그게 살짝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했고 좀 웃기기도 하고,
일상에서도 그렇게 조심해야 하는건가 싶어 측은해지기도 했는데,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 비슷한 걸 이번에 오키나와 여행 가서도 느꼈다.
일본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희미하게 왠지 모를 불쾌감이 보였던 것이다.
'모두가 나에게 친절할 수는 없다. 그러길 바라는 게 이상한 사람이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그 이유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더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물론 모두가 나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는 건 아니다.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있었다. 다른 손님들한테 주문받을 땐 엄청 친절했던 직원이
나한테만 무표정으로 주문을 받는다던가.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거기서'그 손님이 단골손님이던가 알바랑 아는 사이였겠지'라거나
'설마 그동안 일본의 서비스 정신이 후퇴한 건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회피적인 생각이고.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일본은 과거 야쿠자 때문에
문신 같은 그런 야쿠자가 연상되는 부분들에 대해 엄청나게 보수적이다.
대다수의 목욕탕에서 작은 이니셜 문신 하나만 있어도 출입을 못 하게 막아버릴 정도로.
나는 문신은 없고 앞으로 할 생각도 없지만,
아마 짧은 머리 스타일도 문신과 비슷한 결로 생각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여행하며 찍은 내 사진을 스스로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가긴 했었다.
'나 좀 인상이 양아치 같지 않나?'하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에이~ 기분 탓이겠지'하고 넘겼을 뿐.
얼마 전 엄마랑 같이 외식하며 내 인상이 살짝 건달 양아치 같지 않냐고 슬쩍 물어보니,
그걸 이제 알았냐고 한마디 하신다.
...
그걸 계기로 다시 머리를 길러 단정한 스타일로 깎았다.
식당 주인 할머니가 내 얼굴을 보고 웃은 이유가
넓은 이마 때문이었는지, 혼신의 서비스 정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랜만에 날 보고 미소 짓는 제3자를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째서 많은 탈모인들이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지 않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